“저기 히나타 군…. 혹시 아픔까…?”
“응? 뭐가? 나 지금 완전 괜찮은데?!”
테토라의 갑작스러운 물음에도 히나타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몸짓과 말투 그리고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점심시간 전 마지막 쉬는 시간이었다. 전 수업 시간에 썼던 교과서를 책상 밑에 쑤셔 넣듯이 집어넣은 히나타를 멍하니 쳐다보다 던지듯 물어본 질문이었다. 아프다고 말 한 적도 없고, 몸이 불편하다는 티를 낸 것도 아니었는데 테토라는 어디서 히나타의 상태를 눈치챈 건지 끈질기게 물어왔다.
“아니, 히나타 군이 오늘 좀…. 지금도 얼굴이 빨간 것 같슴다. 열나는 거 아님까…?”
“이게 다 테츠 군이 나를 뜨거운 눈길로 쳐다봐서 그런 거잖아.”
어머, 부끄러워라-. 여유가 가득 담긴 목소리.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맑은 초록빛의 눈은 능청스럽게 윙크를 날렸다. 과장이 심하지만 그래서 더 자연스러운 히나타의 반응에도 테토라의 눈빛에는 여전히 걱정과 불신이 담겨있었다. 그런 마음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방 테토라의 마음을 알아차린 히나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믿지 못하는 테츠 군에게 내가 지금 얼마나 괜찮은지 보여주겠어! 그리고는 늠름하게 한쪽 다리로 서서 재빠르게 공중제비를 도는 모습. 앞자리에 앉아있던 미도리마저 히나타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가 공중제비를 도는 모습에 언제나 그래왔듯 짧은 한숨을 쉬며 못 본 척 다시 고개를 돌렸다. 뭐, 그런 미도리의 모습도 이제는 익숙했다.
“진지하게 말임다, 히나타 군.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주십셔.”
전처럼 히나타 군 혼자 끙끙 앓아도 좋아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구여! 웃음기가 조금도 담기지 않은 테토라의 진지한 말에 히나타가 하하하,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테츠 군은 친절하네.”
아플 때는 꼭 테츠 군에게 말해서 도움을 받아야겠어. 아, 그나저나 다음 시간이 쿠누기 선생님 시간이잖아! 어서 준비해야지, 아니면 또 혼나려나! 가볍게 어깨를 돌리던 히나타가 호들갑을 떨며 자리에 앉았다.
마음 써주는 테토라에게는 미안하지만, 저번에 함께 했던 크루즈 라이브처럼 슬쩍 발을 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테토라는 그때도 히나타의 고집에 못 이겨 억지로 쉬게 할 수 없었다고 말하겠지만, 처음부터 완벽한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했던 히나타에게는 크루즈 라이브가 좋고 즐거웠던 만큼 아쉬움이 잔뜩 묻어있는 무대로 남아있었다.
곧 있으면 신세를 졌던 선배들에게 감사와 아쉬움, 그리고 미안함을 전하는 귀중한 답례제가 있을 예정이었고, 선배가 없는 유닛이지만 트윙크도 답례제에 참여하기로 했다. 1학년 둘로 이루어진 불안정한 유닛인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준 선배들을 위한 자리로, 여태껏 받은 도움과 관심 그리고 애정을 돌려주기 위한 라이브를 준비 중이었다. 아, 물론 더 넘치는 끼와 특출난 재주 때문에 팬들의 하트를 빼앗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지. 우리가 너무 잘난 탓 아니겠어? 누구 들으라고 속으로 잘난 체를 하던 히나타가 한쪽 입꼬리를 잡아당긴다.
이런 시기이다 보니 더욱더 누구의 발목도 잡고 싶지 않았다. 히나타가 담담하게 생각한다. 그게 테토라라면 더욱 더 그러했다. 옆에서 심려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테토라도 누구보다 더 열심히 답례제를 고민하고 있겠지. 얼마 전 있었던 용왕전처럼, 답례제를 향한 생각이 많을게 분명했다. 우직하고 강해 보이지만 사실 섬세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이니까. 테츠 군은.
하루하루 답례제가 다가올수록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다. 일 년간 정들었던 자리, 익숙한 공기와 거슬리지 않는 소음, 옆자리의 테토라까지. 답례제가 지나면 이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오늘따라 답지 않게 조금 감성적인 걸까. 아닌 척 서둘러 책상 밑에서 교과서를 꺼냈다. 아직 집요하게 느껴지는 테토라의 따가운 시선을 못 본 척, 고개를 숙여 머리카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숨겼다. 어서 선생님께서 들어와 수업을 시작해주시기를 바란 건 살면서 처음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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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제대로 흘러가고 있는 건지, 수업 시간은 길고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쿠누기 선생님의 눈에 띄지 않으려 최선을 다해 칠판에 시선을 고정해보지만, 저도 모르게 옆자리에 앉은 히나타에게 눈길이 흘러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턱을 괴고 지루하단 표정으로 칠판을 바라보고 있는 히나타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 다르달까. 오늘따라 지쳐 보였다. 웃는 모습도 평소와 같이 밝아 보이지 않았고, 두 뺨도 조금 붉어 보이고…. 히나타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확실히 알리고 싶지 않아 하는 게 있어 보였다. 2월의 초입 부인 지금, 더워서 저런 건 아닐 테고. 정말 히나타의 말대로 자신의 눈빛이 너무 뜨거웠다고 생각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흘러 이미 효과가 사라졌을 시간이었다. 뭐, 처음부터 히나타의 말이 진심일 거라 믿지도 않았다. 어쨌든, 테토라의 동물적인 직감으로 보면 히나타가 아픈 것이 확실했다. 그렇다고 당사자가 거리를 두고 있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냥 보고만 있기에는 테토라의 속을 가득 채운 남자다움이 씩씩 화를 낼 것이 뻔했다. 그래, 아무래도 이 수업이 끝나면 점심시간이니 억지로라도 양호실에 데려가야겠다. 굳게 결심한 테토라가 다시 슬쩍 히나타를 쳐다본다. 시선을 칠판에서 공책으로 옮겨 작게 끄적이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공책 구석에 작게 낙서하는 모습. 턱을 괴는 손에 살짝 짓눌린 뺨. 옆에서 보니 더 눈에 띄는 속눈썹까지. 저도 모르게 멍하니 히나타를 구경하던 테토라가 화들짝 놀라 급하게 시선을 옮겼다. 쿠누기 선생님께 들키면 큰일이다. 절대 점심시간만 빼앗기지 않을 게 확실한 모험. 평상시 히나타와 하던 비싼 음료수를 건 눈치 게임도 이런 전율은 없을 거라며, 정신을 바짝 차리자! 자신을 타이른 테토라가 열심히 수업 내용을 공책에 받아 적는다.
그런 테토라의 마음을 알았는지 아니면 혼자 고민한 시간이 그만큼 길었던 건지, 쿠누기 선생님과 몰래 하던 눈치 게임의 끝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범위를 미리 예습해오라는 말과 함께 쿠누기 선생님이 자리를 뜨자 그제야 아이들도 긴장을 푼 듯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 일 년이 지나도 다들 같은 마음이구나. 아차, 그게 아니지.
“저기 히나,”
“야호! 점심시간! 나는 매점 가서 빵 사 올 테니까!”
테토라의 부름을 듣지 못한 건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후다닥 교실 밖으로 달려 나간 히나타의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가 않았다. 뛰쳐나가는 뒷모습을 보고 반사적으로 뻗었던 손이 민망해 재빨리 거둔 테토라가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어봐 줬으면 좋았을 텐데. 왜냐면,
“저도 오늘 매점이란 말임다….”
쓸쓸히 자리에서 일어난 테토라가 가방에서 지갑을 찾았다. 점심시간 후부터는 답례제 연습이 있기 때문에 히나타 군을 양호실로 끌고 갈 수가 없다구여…. 이런 따뜻한 마음도 모르고 누군가에게 쫓기듯 밖으로 뛰어나간 히나타가 조금 얄밉기까지 했다.
“테토라 군, 매점 가시나요?”
“아, 매점임다. 하지메 군은여?”
“저는 도시락이랍니다. 아침에 동생들 것과 함께 만들었어요.”
그래서 동생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가득하다며 다정한 미소를 짓는 하지메를 보며 테토라도 씨익 미소지었다.
“아침부터 대단함다, 하지메 군!”
“별거 아닌걸요. 아, 그나저나 아까 히나타 군이 엄청 빠른 속도로 뛰어가던데, 매점에 갔나요?”
“그렇슴다. 같이 가면 좋았을 텐데 말임다.”
조금 시무룩해졌다가 얄미워졌다가. 변덕스러운 자신의 마음에 어쩔 줄을 모르고 거칠게 자신의 머리를 헤집은 테토라가 아차 급하게 후회하며 다시 머리를 정리했다. 매점에 가야 하는데 산발인 채로 갈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이래 보여도 아이돌이니까.
“아…. 아침에 히나타 군도 도시락 싸 왔다고 그랬었는데…. 중간에 배고파서 먹어버린 모양일까요?”
“도시락이여?”
“네. 아침에 도시락 이야기했었거든요! 동생들 도시락을 싸주면서 같이 만들었다고 했더니 히나타 군도 유우타 군의 도시락을 만들면서 만들었다고 했어요.”
먹은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데, 언제 먹었던 걸까요…? 말했다면 제 것을 나눠줬을 텐데…. 하지메의 말에 테토라도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되짚어본다. 아침에 있던 HR 시간부터 점심시간인 지금까지, 테토라가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순간을 뺀다면 옆자리에는 항상 히나타가 있었다. 그리고 히나타가 아무리 배가 고팠다고 해도 몇 분 되지 않는 그 짧은 순간에 허겁지겁 성급하게 도시락을 먹었을까? 정말 그렇다면 급하게 먹어버린 바람에 얹힌 걸까…? 아니라고 잡아떼기는 했지만 계속 생각이 나는 히나타의 ‘그’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전적이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슴까? 역시 사람은 정직하게 살아야 함다! 아프다고 왜 말을 하지 못하는 걸까여…. 역시 히나타 군을 찾아서 이야기를 해봐야겠슴다. 열심히 고민을 해봐도, 결국 생각의 끝이 히나타가 아프다는 결론으로 흘러가자 자기도 모르게 얕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갑을 주머니에 잘 집어넣은 테토라가 하지메에게 말했다.
“저, 다녀오겠슴다.”
매점에 가는 것뿐인데 쓸데없이 비장한 테토라의 모습에 하지메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녀오세요, 테토라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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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테토라가 걱정했던 그대로였다. 매점에 간다던 히나타의 뒤를 쫓듯 허겁지겁 급하게 달려왔지만, 매점 앞 많고 많은 인파 속, 주홍빛의 머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 있는검까…?!”
히나타 군! 애달프게 이름을 불러봐도 흘끔흘끔 쳐다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만 모을 뿐, 이름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카페테리아에 있는걸까여? 테이블 사이를 누비며 익숙한 얼굴을 찾았지만, 이곳도 정답은 아니었나 보다. 으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검까, 히나타 군. 호, 혹시 매점에 가다 쓰러진 건 아니겠져?! 또다시 빠른 발걸음으로 향한 곳은 양호실. 똑똑. 들어오라는 사가미 선생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간 테토라가 재빠르게 양호실을 둘러봤지만 보이는 거라고는 빈 침대와 책상 위에 널브러진 맥주 캔과 깜짝 놀라 테토라를 쳐다보고 있는 양호 선생님뿐이었다.
“죄송함다! 혹시 히나타 군 보지 못하셨슴까?”
“어, 아…. 아니, 못 봤는데. 무슨 일 있어?”
“길을 엇갈린 것 같슴다. 찾으면 꼭 데리고 올테니까여!”
“아, 응…. 그래.”
꾸벅, 허리를 직각으로 숙인 체육계 인사와 뜬금없이 히나타를 데리고 오겠다는 테토라의 말에 당황스레 대답한 사가미 선생님을 두고 양호실을 나섰다.
문을 닫고 나왔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검까. 어깨너머 본 책 속 추리의 대가들처럼 손가락을 머리에 가져다 대본다. 그러다 혹시 벌써 매점에 들렸다 다시 교실로 돌아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책상에 걸터앉아 다리를 허공에 흔들며 요! 테츠 군, 웃으며 테토라를 반겨주는 히나타가 절로 상상이 되었다. 정말 교실에 있다면 지금 노력한 모양새가 안 살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으니 차라리 자리에 앉아 빵을 맛있게 먹고 있었으면. 발걸음을 돌려 교실을 향해 후다닥, 복도를 뛰어가는 테토라의 머릿속에는 쿠누기 선생님이나 하스미 선배에게 걸리면 절대 반성문 따위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 따위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저, 어서 히나타를 찾아 자신을 걱정시키지 말아 달라는 엄한 소리를 하고 싶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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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히나타 군,”
히나타 군 있슴까? 문틀을 잡고 헉헉, 숨을 몰아쉬는 테토라가 고개를 내밀어 히나타를 찾는다. 기대와 다르게 보이지 않는 그 모습에 진이 쭉 빠져버리고 말았지만.
“히나타? 아까 나간 후로 아직 오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야?”
벌써 점심을 다 먹고 연습실로 가기 위해 하지메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가방을 챙기던 토모야가 테토라를 발견하고 걱정스레 다가왔다.
“매점에 간다고 해서 뒤따라갔더니 찾을 수가 없어서…. 다시 교실에 왔나 하고 와봤슴다.”
없으니까 다시 찾으러 가봐야겠네여…. 바람에 날린 머리를 긁적이며 테토라가 말했다. 도대체 어디 있는검까.
“전화는 해봤어?”
“아….”
전화! 으아…. 그 생각을 못했슴다! 으뮤, 바보같네여…. 자기 자신을 탓하는 그사이에도 핸드폰을 찾아 히나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느새 다가온 하지메가 염려스러운 얼굴로 테토라를 쳐다봤다.
“히나타 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아, 오늘 히나타 군의 컨디션이 조금 안 좋아 보였는데 보이지 않으니까 걱정이 돼서 그렇슴다….”
나가기 전에 붙잡아야 했는데. 손을 뻗는 사이 바람처럼 달아나버린 히나타를 생각하니 울컥, 무언가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진동 소리…. 히나타 군 가방에서 들리는데…?”
자리에 앉아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지 미도리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마 히나타가 핸드폰을 챙기는 것을 까먹은 건지, 가방에서 외롭게 울고 있는 그의 핸드폰의 존재를 알자마자 테토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우연히 히나타와 계속 엇갈리고 있는 걸 수도 있을 텐데, 교실에서 기다리는 게 나으려나. 하지만 만약 정말 히나타가 아픈 것을 숨기고 혼자 앓는 중이라면? 유난히 아련하게 느껴졌던 히나타의 웃음이 계속해서 테토라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크리스마스 때도, 또 얼마 전 있었던 크루즈 라이브 때도 그랬다. 히나타는. 아니 그 전부터 조금씩 신경이 쓰였다. 항상 해맑고 가볍게만 느껴지는 모습으로 처절하게 숨기는 무언가. 히나타에게는 그런 부분이 있었다. 왜 비틀거리면서도 그렇게 혼자 서 있으려 하는 검까. 그리고 테토라는 그런 히나타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도 같이 찾을게.”
테토라의 날카로워진 표정에 토모야가 생각을 끊어주듯 말했다. 옆에서 하지메도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장실에 갔을 수도 있으니까, 제가 보고 올게요!”
“그럼 나는 운동장 쪽을 보고 올게. 다들 핸드폰 챙기고.”
히나타가 다시 교실로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미도리는 교실에서 기다려줘. 아직 도시락을 먹는 중인 미도리에게까지 적절한 임무를 수여 한 토모야가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봤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5분 전. 이후로는 유닛별 연습이 있으니까….
“매점이랑, 카페테리아랑 양호실에는 없었슴다. 그럼 저는 경음부실을 보고 오겠슴다.”
“응. 아마 히나타와 엇갈리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눈빛으로 테토라를 다독인 토모야가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연락할게. 토모야와 하지메가 먼저 교실 밖으로 나섰다. 뒤이어 테토라도 빠른 걸음으로 경음부실로 향했다.
걱정되는 마음처럼 조급하게 움직이는 발걸음으로 도착한 경음부실. 똑똑, 문을 두드리고 기다려도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실례하겠슴다.”
문을 열고 둘러본 경음부실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정리가 잘 되어있었고, 히나타가 자주 이야기해 줬던 악기들과 부실의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관까지. 신기하네여, 진짜 관임다. 하지만 테토라가 찾아다녔던 주인공인 히나타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습관처럼 머리카락을 흩트린 테토라가 주인이 없는 부실에서 나가려고 몸을 돌리는데 번뜩 떠오른 생각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관을 쳐다봤다. 설마, 관 속에 누워있는 건 아니겠져…?
“으, 으뮤…. 죄송함다…! 한 번만 열어볼게여….”
조심히 다가가 슬쩍 관 뚜껑을 열어본 테토라가 관 속에 누워있는 사람의 모습에 움찔 놀랐다. 검은 머리, 창백해 보이는 피부의 사쿠마 레이 선배라는 걸 깨닫고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긴 했지만, 두 팔로 관 뚜껑을 잡고 있는 상태여서 거북이 인사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아, 안녕하심까…. 죄송함다….”
물론 아주 작은 목소리로. 깨면 아주 곤란하다. 그리고는 다시 신중히 뚜껑을 닫은 테토라가 도망치듯 경음부실에서 나왔다. 히나타는 어디 있는 걸까. 찾았다는 연락이 없는 핸드폰을 확인한 테토라가 거칠게 마른세수를 했다. 저 추리는 못한단말임다. 매점도, 양호실도, 교실과 경음부실도 아니고. 토모야와 하지메가 가본다던 운동장과 화장실도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인 걸까. 이제 점점 오기가 생긴단 말임다, 히나타 군! 크루즈 라이브에서도 이렇게 저희를 피해 다니지 않았슴까. 그때는 갑판 위에 있엇져. 감기에 걸렸다면서 추운지도 모르고 밖에서….
“아, 설마…?!”
설마 옥상에 있는 건 아니겠져? 거기는 학생 출입 금지 구역이란 말임다. 툴툴거리면서도 허겁지겁 계단을 올라간다. 가슴 한가운데가 울렁거린다. 꾹꾹 눌러봐도 꺼지지 않는 느낌. 좋지 않은 기분이었다. 급하게 달려서 그런 걸까 봐 발걸음의 속도를 줄여보지만, 활짝 열려있는 옥상 문을 본 순간 저도 모르게 뛰쳐 들어가듯 내달린다. 출입금지인 장소인 것 치고 예쁘고 정갈하게 잘 꾸며진 곳이었다. 맑은 빛의 하늘과 푸르른 초록빛으로 섞인 공간 속, 벤치에 누워있는 히나타가 보였다.
“히나타 군?!”
후다닥 달려가 코에 손가락을 대고 숨을 쉬는지 확인한 테토라가 조금 가파르고 열이 담긴 히나타의 숨결에 급히 이마에 손을 올렸다.
“역시 열나는 거 맞잖슴까!”
으득, 이를 갈며 혼잣말한 테토라가 다정히 히나타를 불러본다. 히나타 군, 양호실에 가여. 테토라의 목소리에 반응하는지 몸을 뒤척인다. 깊게 잠 들은 것 같아 깨우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양호실로 데려가야 하는데….
“실례하겠슴다, 히나타 군.”
얕은 한숨을 내쉰 테토라가 깨지 않게 조심히 히나타의 목 뒤와 등을 받치고, 다른 쪽 팔로는 두 다리를 받친다. 으챠, 가볍게-라고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힘들게도 아니었다- 히나타를 안은 테토라가 주의하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일어나면 잔소리를 잔뜩 해줄 거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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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 떠진 눈. 깜빡깜빡 눈을 끔벅이다 순식간에 상황 판단을 해버리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히나타가 눈앞에 보이는 유우타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 몸부림쳤다.
“유, 유, 유우타 군?!”
“그래! 이 망할 형!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지, 이게 한 번도 아니고 왜 매번 그러는 건데?!”
질책이 가득 섞인 목소리와 찌푸려진 얼굴에서 보이는 화와 걱정, 안심과 아픔까지. 그런 표정을 짓게 하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유우타의 표정을 이어받듯 울상이 될뻔한 히나타가 급히 표정 관리를 한다.
“미안해, 유우타 군…. 그냥 조금 잔 거뿐이야. 아파서 그런 거 아니었어! 아팠다고 해도 이 형아 튼튼하니까! 봐, 조금 잤다고 이렇게 펄펄해졌는걸! 정말이야!”
알잖아, 내가 얼마나 억세고 건강한지! 근육을 뽐내는 멋진 자세를 지으며 맑은 웃음을 지어 보이는 히나타를 쳐다보던 유우타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몸살감기래. 여태껏 잘도 숨겼다, 진짜….”
“감기? 아닌데, 진짜 건강해! 이렇게 멀쩡한걸!”
믿어줘. 애교가 담긴 목소리와 잔망스러운 윙크를 하자 유우타가 쯧 혀를 찼다.
“옥상은 왜 갔어. 거기서 잘 거면 차라리 양호실에 오지.”
바보처럼 왜 또 찬 바람 부는 곳으로 간 거야. 정말 형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유우타가 히나타를 걱정한 만큼 툴툴거리고 있다는 걸 어떻게 모를까. 히나타의 안색을 살피는 애정이 가득 담긴 눈빛에 그저 웃음으로 답했다.
“그나저나, 유우타 군은 옥상에 왜 간 거야?”
“나 아니야. 옥상 간 거.”
테토라 군이 형 대리고 왔어. 얕은 한숨을 내뱉으며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은 유우타가 말했다.
“…테츠 군이?”
“A반 애들이 형 찾으러 다녔대. 그러다가 테토라 군이 발견해서 양호실로 데리고 온 거고. 연습 시작하기 전에 다들 왔다가 갔어. 아, 나한테 연락해 준 것도 테토라 군이야.”
내가 형 아픈 걸 유성대 사람을 통해서 들어야겠어? 다시 생각해보니 열이 오르는지 씩씩거리던 유우타가 그래도 히나타가 아프다는 걸 상기하고는 열이 나는 마음을 꾹 짓눌렀다.
“아! 그나저나 우리 연습은?!”
“네네, 리더가 아픈 바람에 무산입니다! 연습은 무슨, 집 가서 잠이나 자.”
사가미 선생님이 감기약도 챙겨 주셨어. 저녁 먹고 먹으래. 자, 신발. 조금 떨어져 있던 신발을 편하게 신을 수 있게 침대 옆으로 가지고 와준 유우타가 의자 옆에 놓여있던 히나타의 가방을 들었다.
“유우타 군이 형아 가방도 들어주는 거야? 오-, 든든한걸!”
우리 유우타 군이 이렇게 멋지게 컸다니! 형은 더 바랄 게 없어. 능청스러운 히나타의 말에 유우타가 됐으니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라며 불평했다. 신발을 신고 겉옷을 챙겨 입으니 마침 자리를 비웠던 사가미 선생님이 양호실로 돌아왔다.
“야호, 선생님. 우리 이제 집에 갈게요!”
“이 녀석, 몸이 안 좋으면 바로 오라고 있는 곳이 양호실인데 혼자 그렇게 앓으면 어떡하냐.”
답례제가 코앞이라도 그렇지. 그렇게 몸을 굴리면 안 되지. 덕분에 테토라가 고생했으니 내일 보면 인사해라. 히나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더니 하얀 가운을 휘날리며 털썩 의자에 앉았다.
“응, 그럴게요! 그럼 안녕!”
“앗, 형! 으…. 고생하세요, 감사합니다.”
후다닥 양호실 밖으로 달려 나간 히나타를 대신해 꾸벅, 인사를 하고 나온 유우타가 벌써 저 멀리 달려가 버린 형의 모습에 짜증을 낸다.
“유우타 군! 나 잡아봐라!”
“형! 아, 좀! 가만히 좀 있어!”
하하하, 둘밖에 없는 복도. 히나타가 달리는 소리와 함께 울리는 가벼운 웃음소리. 하지만 웃는 것도, 그렇다고 우는 것도 아닌 이상한 표정. 다시 열이 오르는 건지 히나타가 붉게 달아오른 두 뺨을 거칠게 두 손으로 문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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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대 유닛 연습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테토라와 시노부의 답례제 라이브 연습이 끝이 났다. 같이 집에 돌아가지 않겠냐는 시노부의 제의를 정중하게 거절한 테토라의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미도리가 답례제 연습에 함께하지 않아 테토라가 없으면 혼자 돌아가야 할 시노부에게는 미안했지만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테토라의 마음이 꽤 초조했다. 끝에는 거의 달리다시피 도착한 곳은 양호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노을. 강렬한 주황빛 뒤로 따라오는 쓸쓸한 어둠의 시간이었다. 연습이 끝난,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양호실의 문고리를 돌려본다. 기대했던 테토라의 마음을 놀리듯 야박한 양호실의 문은 잠겨있었다. 무사히 집에 갔다는 뜻이겠져…. 조금의 실망이 섞인 눈빛을 거둔 테토라가 머리를 긁적인다. 터벅터벅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연락해볼까. 자고 있으려나. 한참을 고민하던 테토라가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히나타에게 문자를 보낸다.
[몸 좀 어떻슴까?]
짧은 문자이지만 혹시나 오타가 있을까 봐 한 번 더 확인한 후 전송 버튼을 누른 테토라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지 않고 꼭 손에 쥔 채로 걷는다. 양호실 앞 복도에서 계단으로. 계단에서 현관으로. 혹시나 답장이 왔는데 알람이 울지 않았을까 중간중간 확인하는 자신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면서.
신발장에서 신을 갈아신는 도중 울리는 핸드폰에 발작하듯 다급하게 확인한 테토라가 헉, 숨을 들이쉬었다. 답장이라고 생각했던 알림은 전화를 알리는 긴 울림을 만들었다. 크, 크흠. 재빨리 목을 푼 테토라가 혹시나 끊길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여?”
[네, 여보입니다!]
밝은 목소리로 장난부터 치고 보는 히나타의 목소리로 채워진다.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신을 갈아신던 자세 그대로 멈춘 테토라가 머리를 긁적였다.
“몸은 좀 어떻슴까?”
[좋아! 날아갈 것 같은 기분! 테츠 군은 이제 연습 끝나서 가는 거야?]
평소처럼 장난에 넘어가 허둥지둥거리는 목소리가 아닌 조금 가라앉은 테토라의 목소리가 신경 쓰이지도 않는지 종알종알 내뱉는 히나타의 말도 하나둘 채워져 간다.
“네, 히나타 군은 집인가여?”
[응! 아까 유우타 군한테 들었어. 테츠 군이 양호실로 데려다줬다면서? 고마워! 빚을 졌네.]
“보답받겠다는 생각은 없었슴다….”
[히히, 그래도 고마워! 잊지 않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마십셔. 일단 푹 쉬구여….”
[응! 테츠 군도 푹 쉬고! 내일 보자!]
밝은 화면이 시간이 지나 꺼질 때까지 멍하니 핸드폰 화면을 보며 서 있던 테토라가 마저 정신을 차리고 마저 신을 갈아 신었다. 분명,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아프지 않다면서 왜 거짓말을 했냐고, 왜 말을 하지 않는 거냐며 잔소리 폭격을 던져주고 싶었던 마음이 어디로 갔을까. 먹먹했다. 아픈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 자신을 감추기 위해 애쓰고 있는 히나타를 보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왜 그러는 검까. 왜 그렇게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있는 건데여.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검까? 생각이 생각을 물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물음의 답을 알 수가 없었다. 아마 당사자도 말해주지 않겠지. 다시 울렁거리기 시작하는 가슴을 세게 툭툭 친 테토라가 실내화를 들어 신발장에 집어넣었다. 탁하고 닫힌 신발장의 모습이 왠지 안에 있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려 자신만의 벽을 만든 히나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아침 운동이 끝나자마자 등교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평소보다는 이른 시간, 아침 식사도 챙겨 먹지 않고 나선 길은 쌀쌀하기만 했다. 아무도 없는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책상에 얼굴을 기대고 엎드린 테토라가 뻑뻑한 눈을 감았다. 어젯밤, 평소 같았으면 진작에 잠이 들었을 시간이었지만 잠의 꼬리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왜? 물어보는 자신이 어이없게도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마치 정말 궁금한 질문의 답을 듣지 못해 종일 궁금해하는 어린아이처럼, 테토라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히나타였다. 처음에는 히나타의 행동이 마냥 못마땅했던 것 같다. 엉뚱하고 못 말리는 행동을 자주-대부분- 했지만, 가끔 보여주는 행실이나 마음가짐은 테토라가 알고 있는 사람 중 손꼽히게 어른스러웠고 깊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었다. 크루즈 위에서도 약한 모습을 꽁꽁 숨겨 보여주지 않더니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히나타는 뭘 그리 감추고 싶은 걸까. 아무도 없는 교실. 똑딱이는 시침 소리만 들려왔다. 시험공부를 도와주던 히나타가 장난을 가득 담아 자신을 바보라고 놀려대던 순간이 떠올랐다. 정말 바보는 히나타 군이라고 가서 따지고 싶었다.
빈속에 카페인 음료를 마신 듯 심장이 무자비하게 뛴다. 누군가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테토라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분명 테토라는 히나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 그러니 이렇게 고민할 필요도 없겠지. 그렇게 자신을 위로해보지만 욱하니 튀어나오는 이름 모를 감정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괜찮다며, 자신은 괜찮다며 주제를 돌리던 히나타의 말과 감정으로 쌓인 마음이 짓눌린다. 왜일까. 연거푸 울렁거리는 마음이 불편하다. 얹힌 것처럼 테토라의 마음을 짓누르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마치 큰 파도에 통제할 수 없이 흔들리는 작은 배에 올라탄 느낌. 끔뻑끔뻑,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뜬 테토라가 비어있는 히나타의 자리를 한참 쳐다보다 다시 눈을 감았다.
“테-츠 군!”
야호! 오늘은 2등이네! 어라, 자는 거야? 분명 펄쩍펄쩍 뛰면서 교실로 들어왔을 게 분명한 히나타의 발소리는 행동과는 다르게 조용했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마음, 당사자를 보면 불난 곳에 기름 붓는 격일까 모른 척 눈을 감고 있었지만 테토라의 모든 신경은 히나타에게로 쏠렸다.
“음, 정말 자는 걸까나…?”
자신의 의자를 끌고 와 테토라의 바로 옆에 앉은 히나타가 콕콕 볼을 찔러본다. 테츠 군, 자? 조금 있으면 수업 시작할 텐데! 어제와 다르지 않은 밝고 가벼운 목소리였지만 테토라가 자는 것을 의식했는지 조금은 더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가까이에 다가온 시선이 느껴졌다. 달콤한 향기와 따뜻한 숨결도. 눈앞에서 휙휙 손을 흔드는 것마저 느껴졌다. 다시 톡톡 볼을 건드리던 히나타의 손가락이 조심스레 움직인다. 조심히 뺨을 만지던 손가락이 작은 용기를 얻었는지 뺨을 지나 살짝 입술을 건드렸다. 움찔, 저도 모르게 테토라가 몸을 굳히자 히나타의 손가락이 언제 닿았냐는 듯 바람처럼 떨어졌다. 그리고 짧게 이어지는 침묵.
“아주 잘 자는 공주님을 깨우는 법을 나는 알고 있지! 그건 바로!! 찐-한 뽀뽀!”
챱,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테토라의 뺨을 잡은 히나타의 손이 매웠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악! 아픔다!!”
“어라? 아직 일어나면 안 돼. 공주님은 왕자님의 뽀뽀를 받아야지!”
“아, 안됌다!”
아까까지 모르는 척 누워있던 게 맞는지 몸을 뒤로 빼다 못해 자리에서 발작하듯 일어난 테토라가 기겁을 하며 말했다. 그제야 보이는 히나타의 얼굴. 살짝 붉어진 두 뺨이 눈에 띄었다. 아직도 열이 나는 것 같슴다, 히나타 군.
“왜 자는 척 한 거야, 테츠 군!”
나는 다 알고 있었지만! 흥, 토라진 척 하면서도 잘난 체를 하는 히나타가 의자를 자기 자리로 옮겼다. 새초롬한 눈빛으로 테토라를 보는 것을 잊지 않은 채. 민망함에 어색하게 시선을 피한 테토라가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몸은, 좀 어떻슴까…?”
“내 컨디션은 항상 완벽이지!”
“완벽한데 어제는 왜 그런검까?”
옥상에서 쓰러져 있어서 얼마나 놀랐는데여.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올라가 본 옥상. 벤치에 누워 깊게 잠들어있던 히나타를 다시 떠오른 듯 테토라의 얼굴이 조금 굳어있었다.
“쓰러진 건 아니고…. 그냥 바람 쐬러 갔다가 기분이 좋아져서 낮잠, 잤다고나 할까…?”
“매점 간다고 하지 않았슴까.”
“갑자기 입맛이 없어져서 그랬지!”
“도시락도 싸 왔으면서여?”
“윽…. 테츠 군, 끈질기네!”
그렇게 끈질기면 다른 사람들한테 인기 없을 거야! 민망한 마음에 이런 말 저런 말, 꿍얼거린다.
다른 때와 다르지 않은 히나타의 반응에 테토라가 시선을 바닥으로 떨궜다. 히나타를 보면 이런 툴툴거리는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그게 아닌데. 왜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못하냐고. 친구는 그럴 때 있는 존재가 아니냐고. 아니, 왜 나에게 마음을 보여주지 않는 거냐고. 내가, 나구모 테토라는 믿을만한 사람이 아닌거냐고. 떠오르는 생각들은 너무나도 일차원적이고 구질구질하게만 느껴졌다. 답답하다. 죄가 없는 머리카락이 오늘도 이리저리 헝클어진다.
“테츠 군.”
“뭠까.”
“화났어?”
“……화 난 거 아님다.”
테토라도 모르는 테토라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테토라가 생각해도 모난 모습으로 화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자신의 모양새가 꽤 어이가 없었다. 이런 모습은 전혀 남자답지가 않다. 왜 히나타가 이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자신이 흔들리는 건지.
“왜? 왜 화가 났는데?”
아니라고 부정하는 테토라의 대답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되묻는 히나타가 너무하다. 아예 테토라를 향해 몸을 돌리기까지 한 히나타가 희미한 미소를 담은 얼굴로 시선을 맞춰온다.
“저도… 모르겠슴다.”
그러게. 나는 왜 화가 났을까.
*
자신을 피하는 히나타가 답답하고 서운한데 그게 왜인지 이유를 잘 모르는 테토라가 보고 싶어서 꽤 끙끙거리면서 쓴 것 같네요!
보고 싶었던 부분이 잘 표현되었으려나요. “저도… 모르겠슴다.” 이 말을 시키려고 너무나도 먼 길을 온 기분입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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